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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Sur la mort d'un chien』by Jean Grenier
삶과 죽음을 관조하는 나를 발견하다, 그르니에의 글은 대쪽같은 단정함이 있지만 버드나무 가지 같은 유연함도 가지고 있다. 모호하고 어려운 말로 독자에게 강요를 하는 것이 아니라 부드럽게 조근조근 이야기 한다. 그렇다고 그르니에의 문체가 친절한 것은 아니라 한참을 생각하게 한다. 유치원생을 대하듯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설명해주는 것이 아니라(가끔 이렇게 다 설명해서 읽는 재미를 반감시키는 작가들도 있다) 조근조근 대화하다 툭- 생각을 던진다. 아무렇지도 않게 던져진 그 생각을 한참 들여다보고 있으면 숨겨진 사유가 흘러나와 마음 한켠에 오랫동안 자리잡는다. 이런 것이 그르니에 글의 매력이다.『어느 개의 죽음』은 그르니에가 기르던 개, 타이오의 죽음부터 시작된다. 주인에게 무언의 의무를 종용하던 그 개가 죽었다. 실로 귀찮기도 하던 의무였지만 개가 사라지고 나자 그 의무가 그립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제 그에게 의무를 부여할 타이오는 없다. 타이오의 죽음으로 자신의 이성과 감성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애완견이었던 주제에 자신에게 균열을 선사하다니! 그래서 그르니에는 그 균열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 글을 쓴다. 한 달 정도 동안 쓴 짧은 90편의 단상들에는 깊고도 심오한 사유들이 녹아있다. 글을 읽다가 문득, 그르니에의 사유를 관조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이것은 작가가 친절하게 설명하며 글 속으로 독자를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조금은 엄하게 멀찌감치 떨어져서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다. 자신을 위로하는 글을 쓰면서도 독자는 몰입하지 못하게 하는 글쓰기, 대단하다. 독자는 몰입하진 못하지만 공감은 한다. 이것은 그르니에의 글이 인간이 살아감에 있어 보편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음으로부터 비롯된다. 보편적인데 몰입은 못하고 공감은 한다? 쓰고 나니 뭔가 이상하다. 그러나 나에겐 이랬다. 40. 나는 삶을 끔찍이 사랑한다! 항상 죽음을 생각하는 것도 바로 그렇기 때문이다. 나는 끊임없이 행복을 갈망하지만 그것을 강요할 힘은 지니고 있지 않다. 정작 자신들은 그렇게 하지 않지만, 다른 이들은 당신이 삶을 향유할 수 있음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당신에게 설명을 요구한다. 결국, 숨어버리거나 당신의 행복이 공동의 이익을 위한 것임을 그들에게 믿게 하는 길밖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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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쁘고 쭉빵도 아닙니다..by 쓰레기 at 10/25 잘 읽고 갑니다. ^^ by 무량수 at 05/23 시발섹스하자 시발 옥윤.. by 섹스년 at 04/20 어머 이런게 있었군요! 잘.. by 나무물고기 at 04/11 님께서 갖고 계신 "24 시즌".. by 김광수 at 01/03 감사합니다!! by Com on at 09/14 안녕하세요? _푸훗_ 님! .. by pulbaat at 01/25 음악 너무 좋아서 검색하.. by 윈디아 at 01/25 즐겁고 기쁜, 그리고 .. by laystall at 01/02 _et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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