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턴과 간호사가 몇 번이고,◈
들락거리고 나서야 잠을 들 수가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여사님이 내 손을 꼭 붙잡고 기도하고 계셨다. 아멘. 잘 잤냐? 네, 첫날엔 밤새 앓는 소리를 내면서 자더니 어젯밤엔 잘 자더라. 아침을 먹고 피로 칠갑이 된 기저귀를 갈고 세수를 하고 이빨을 닦았다. 그래도 하루 있었다고 첫날보단 손쉽게 할 수 있었다.


오전 회진, 주치의가 인턴과 간호사를 대동하고 와선 수술 부위를 보며 물었다. 어젯밤에도 출혈이 많았나요, 네 그런데 첫날보단 덜 했어요. 그래도 피 많이 나더라구요. 저기 뽑아낸다는 피도 많이 나오고, 예 계속 수혈받고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이거 피는 언제까지 맞아야 해요? 출혈이 좀 줄어야죠, 그러니까 그게 언제냐구요, 좀 지켜봅시다. 의사가 나간 후 여사님은 구시렁거리셨다. 정확한 게 있어야지, 만날 지켜 보자구만 한다, 그 치? 그러게요. 사실 이제 수술 후 겨우 이틀째인데, 푸훗.


오후 3시쯤 되자, 동생이 병원에 돌아왔다. 너 왜 벌써 오냐? 여사님 이틀이나 여기서 주무셨잖아요. 잠깐이라도 쉬다 가시라구요, 어구 할머니가 그러시디? 네, 안 그래도 되는데, 참 이거 할머니가 언니 먹이래요, 뭔데, 개고기요 욕창 환자들한테 좋다구 할머니가 집에서 직접 하셨어요, 아이고 할머니 또 시장까지 가서 그거 사오시고 만드시고 바쁘셨겠다, 언니 얼른 이거 먹어. (개고기라니, 꺄악.) 근데 이거 냄새도 별로 안 나네? 할머니가 냄새 나면 언니가 안 먹을 거라고 특별하게 요리하신거에요. 안 먹는다고, 못 먹는다고 우기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울 노인네 몸도 안 좋으신데 버스 타고 재래시장까지 가셔서 그거 사고 냄새 땜에 안 먹을까 걱정하시며 여기저기 물어 요리하셨을 것을 생각하니 감사한 마음으로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까짓것, 먹지 뭐. 보온통에 담아온 따뜻한 고기를 소금에 찍어 먹으니 의외로 괜찮은 맛이었다;; 남은 고기들은 동생이 락앤락에 담아 냉장고에 넣었다. 그러고는 나한테 말했다. 언니 나 저 보온통 다시는 안 쓸거야, 깔깔.


4시 30분이 넘어 여사님은 퇴근하셨고 동생과 둘만 남았다. 심심했다. 신경외과 있을 땐 같은 병실의 환자들이 대부분 장기 입원 환자들이라서 환자, 보호자, 간병인 여사님들과 함께 테레비도 보고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누고 해서 가족같은 분위기였는데 여기는 분위기가 싹 달랐다. 서로 쌩까는 분위기라고나 할까. -_- 처음엔 왜 그런가 했는데 며칠 지나고 나서 알았다. 대부분 단기 입원환자였던 것이다. 동생과 수다를 떨다 끝말잇기도 하고 동생 애인이야기도 듣다가 동생이 본 영화 이야기도 들었다. 영화에 내 모든 것을 걸었던 시절도 있었는데 병상에 엎드려 누워 동생에게 듣는 영화 이야기는 뭐랄까, 내게 아무 감흥도 주지 못했다.


옆 침상에 있던 아주머니가 물었다. 오늘은 엄마가 안 자고 언니가 자는 거야? 엄마 아니에요 간병인 여사님이세요, 난 너무 다정해 보이기에 엄마가 간병인으로 있는 줄 알았지, 그리고 저 언니 아니에요! 동생이라구요. 4살이나 어리단 말이에요. -_- 으하하, 내가 너무 크게 웃어서 동생이 삐쳐버렸다. 하지만 그 후에도 동생은 이런 오해를 종종 받았다. 이히히. 난 역시 17세 소녀인 것이다.


다음날, 오전 회진이 끝나고 동생이 말했다. 언니, 너무 샤프해! 인턴이? 아니아니. 언니 주치의 말이야. 완전 내 스탈이야~ L(동생의 남자친구)은 어쩌고? 병원 오면 이른다, 일러. 괜찮아~ 하긴 내가 병원에 몇 개월 있으면서 본 의사들 중에는 가장 말끔하고 젊은 의사였다. 그리고 특수 성형 전문의였다. 성형수술 하면, 쌍꺼풀이나 콧대를 세우는 미용 성형만 생각했었는데 특수 성형이라고 하는 것이 따로 있었다. 욕창이나 화상 환자같은 의료가 목적인 성형 수술을 하는 것이다. 여튼 한 7주 정도 동생의 이 어설픈 짝사랑이 계속 되었다. 뭐 어떻게 보면 양다리고, 푸훗.


주말이 자나가고 월요일이 되었다. 이제 겨우 5일이 지났을 뿐이었는데 한 달은 족히 넘은 것처럼 느껴졌다.
너무 쉽게 지쳐가고 있었다, 젠장.
by _푸훗_ | 2005/11/27 19:47 | -- 병원, 300일. | 트랙백 | 덧글(7)
트랙백 주소 : http://graymental.egloos.com/tb/961080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Commented by 덧말제이 at 2005/11/28 01:21
간병인 여사님, 동생, 할머니... 좋은 분들을 많이 두셔서 불행 중 다행이셨다 싶습니다...
Commented by 음반수집가 at 2005/11/28 11:20
힘내세요. 힘내세요.
그리고 첫눈 오면 소원 하나 비세요.
Commented by 푸른별리 at 2005/11/28 19:12
멍멍이 고기 담은 보온병이라. 동생은 그래서 이제 다신 그 보온병을 쓰지 않나욤? 냐핫. :)
Commented by 푸르미 at 2005/11/29 13:15
이번엔 재미있는 이야기들이네요. 보온병은 어찌됐는지. 동안이신가봐요. 17세소녀라.전 18세 소년으로 남고싶어요. 큭
Commented by _푸훗_ at 2005/11/29 17:00
덧말제이 / 네,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죠. 방긋.


음반수집가 / 아까 눈이 조금 왔다고 하더군요. 시시하게 눈발이 살짝 날린 모양이에요. 그런데 소원 비는거 까먹었네요. 푸훗.


푸른별리 / 그 보온병은 분실되었어요;; 고기만 요리되어서 온 거라 뭐 눈 딱 감고 먹으면 괜찮았어요, 큭.


푸르미 / 어제 안경점에 안경하러 갔었는데 그 아저씨가 내 나이 보더니 깜짝 놀라던걸요. '되게 동안이시네요' 히히히. 집에 와서 동생한테 말했더니 '웃기네' 하더군요. 어쨌든 난 17살 이에요!
Commented by 에우 at 2005/11/29 17:31
그러게요 눈이 왔었대요.- 세상에 어디에서? 전혀 느끼지 못하고 보낸 첫눈.
잘 지내고 있나요?
Commented by _푸훗_ at 2005/11/30 12:48
뭐, 늘 그렇죠. ^_^;;

:         :

:

비공개 덧글

<< 이전 다음 >>



푸훗이 늘어놓는 수다,
카테고리
-- 책을 읽고,
-- 머리를 담그고,
-- 귀를 기울이며,
-- 혼자 말하기.
-- 병원, 300일.
이전블로그
2007년 05월
2007년 03월
2007년 02월
more...
최근 등록된 덧글
이쁘고 쭉빵도 아닙니다..
by 쓰레기 at 10/25
잘 읽고 갑니다. ^^
by 무량수 at 05/23
시발섹스하자 시발 옥윤..
by 섹스년 at 04/20
어머 이런게 있었군요! 잘..
by 나무물고기 at 04/11
님께서 갖고 계신 "24 시즌"..
by 김광수 at 01/03
감사합니다!!
by Com on at 09/14
안녕하세요? _푸훗_ 님! ..
by pulbaat at 01/25
음악 너무 좋아서 검색하..
by 윈디아 at 01/25
즐겁고 기쁜, 그리고 ..
by laystall at 01/02
_etc.
Random!


텍스트지향


스팸퇴치, Click!


온라인 문법/철자 검사기














E-mail, Google_talk
graymental@gmail.com
MSN_Messenger
salinbum@hotmail.com

이글루 파인더
rss

skin by Ho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