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을 만큼 아프다고 표현했지만, ◈
사실 죽을 정돈 아니었다.


단지 너무 어지럽고 통증을 느끼는 모든 신경세포가 엉덩이에 몰려있는 것 같았다. 롯데월드 스케이트 장에서 엉덩방아를 찧었을 때 느꼈던 통증의 100만 배 정도로 아팠을 뿐. 곁에 동생이 있는 줄 알고 간호사 좀 부르라고 짜증을 내고 있었는데 어랏, 여사님이 있으셨다. 동생은요, 오늘은 내가 있기로 했다 너 상태도 안 좋은데 어린 게 감당이나 하겠냐, 그래도 집에..., 괜찮아 네 걱정이나 해라. 간호사 호출 버튼을 눌러 통증을 호소한다고 말씀하시고는 손을 붙잡고 기도를 해주셨다. 간호사가 오고 인턴이 호출되어 왔다. 아파 죽겠는데 인턴이 성형외과 주치의한테 전화하는 소리까지 들렸다. 아씨, 빨랑 아무 진통제나 좀 놔주지. 전화를 끊고 간호사한테 오더를 내리곤 수술 부위를 보았다.


여사님이 낮은 비명소리를 내셨다. 무슨 일이지. 괜찮아요 원래 출혈이 많은 수술입니다, 그래도 이건 너무……, 그래서 수혈도 받고 있는 것이고 괜찮은 거에요 안심하세요, 안심해도 되는 거에요 정말? 네 안심하세요. 간호사가 진통제를 가지고 왔다. 간호사들은 의사가 옆에 있음 꼭 약 이름을 말한다. 어쩌고저쩌고 몇 ㎖ 투여합니다. 뭐 어쩌라고, 츳. 인턴은 수술부위 소독을 하고 나갔다. 여사님은 내 기저귀를 갈아주셨다. 피가 좀 많이 나는구나, 그래요? 수혈도 받고 있고 원래 피 많이 나는 수술이래, 그렇구나. 꽁꽁 말아서 가지고 나가시는 기저귀가 무거워 보였다.


진통제 맞고 나니 자도 된다고 해서 잘 잤다. 아침에 여사님이 깨우셔서 일어나니 여사님 안색은 까칠하셨다. 못 주무신 듯했다. 죄송해서 차마 묻진 못하고 여사님이 떠주시는 죽만 받아먹었다. 엎드려서 받아먹는 첫 끼니였다. 행여나 뜨거울까 봐 후후 불어가며 입에 넣어 주셨다. 얘들 봐라 이게 7000원짜리래, 밥보다 비싸다니 왜요? 그러게 말이다, 밥 한 공기면 죽 두 공기는 나올 텐데, 두 공기는 무슨 더 나와, 그래요? 뭐 이런 시답잖은 이야기를 해대면서 여사님과 아침을 먹고 여사님은 병원 사회복지실에 전화를 하셨다. 병원서 주무신 상황을 설명하시고는 내가 상태가 안 좋으니 조례에 내려갈 수 없다, 뭐 이런 거였다.


오전 회진이 있었다. 인턴이 밤에 피가 많이 났다는 설명을 하고 여사님이 밤에 기저귀를 몇 번이나 갈았다는 말씀을 하셨다. 의사는 출혈이 좀 심한 편이긴 했지만 너무 걱정 말라고 했다. 여사님이 애 얼굴 붓기도 안 빠지는데 이거 문제있는거 아니냐고 물으셨다. 엎드려서 수술받고 계속 엎드려 있어서 그런거지 문제 있는 거 아니라고 곧 부기 빠질 거라고 주치의가 말했다. 그러나 여사님은 계속 애가 눈이 안 떠져요 잘 붓지도 않는 앤데 진짜 괜찮은 거냐고 구시렁거리셨다. 그말을 듣고 나니 아침에 세상이 갑갑하게 느껴졌던 것이 기억났다. 엎드려 있어서 그런 건줄 알았는데 부어서 그런 거구나;; 근데 이거 관은 왜 꽂아 놓은 거에요? 설명 안 드렸나, 이 중요한 걸 설명 안 하면 어떡하나! 주치의는 설명은 안 하고 인턴만 깨졌다. 인턴이 그렇게 한참 깨지고 주치의가 설명했다. 죄송합니다. 어제 인턴이 바로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수술 부위에 꽂아 놓은 것인데 나쁜 피들을 뽑아 내는 겁니다. 그래서 자동으로 빠질 수 있게 이 관이 높게 걸려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관은 항상 이렇게 두세요. 피가 다 차면 간호사들이 알아서 빈 파우치로 바꿔 드릴 겁니다.


회진이 끝나고 물었다. 많이 부었어요? 거울 보면 기절할 거다. 손으로 눈 언저리를 만져보니 대략 짐작이 갔다, 무서울 정도였다. -_- 좀 주무세요 밤에 못 주무셨잖아요, 괜찮아, 똥 싸거나 아프면 깨울게요 주무세요. 오전에 아플 만하니 간호사가 와서 알아서 진통제 놔줬다. 점심시간이 돼서 여사님을 깨워드렸다. 식사하고 오세요, 냉장고에 밥이랑 반찬이랑 있잖아 아침처럼 너랑 같이 먹을란다, 괜찮아요, 내가 안 괜찮아서 그런다. 점심은 밥이었다. 6500원 짜리 쌀밥. -_- 밥을 반 공기 정도 먹고 더 못 먹겠다고 하자 여사님이 성질을 내셨다. 그래서 남은 밥의 반을 더 먹었다. 그 당시엔 배 터지는 줄 알았다;; 그렇게 점심시간 동안에도 여사님은 계속 병실에 계셨다.


오후가 되자 또 아플 만하면 간호사가 와서 진통제를 놔주었다. 같은 병실 사람들 중에선 내가 가장 상태가 안 좋았다. 거긴 일반외과 병동이었기 때문에 거의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간병인이 있는 환자도 나 혼자뿐이었다. 여사님이 피 때문에 기저귀를 갈 때마다 환자나 보호자가 피를 보고 기겁을 했지만 정작 난 볼 수 없어서 덤덤했다. 동생이 평소보다 조금 일찍 4시쯤에 병원에 왔다. 여사님은 동생한테 병원에 잠깐만 있으라고 하셨다. 집에 가서 옷 좀 갈아입고 씻고 오신다고 하셨다. 괜찮다고, 안 그러셔도 된다고 아무리 말씀드려도 어린 애가 감당 못한다고 오늘까지는 당신이 있겠다고 하셨다. 여사님이 퇴근하시고 동생은 기저귀를 갈다가 현기증을 일으켰다. 언니 피가 너무 많이 나. 8시쯤 여사님이 돌아오셨고 동생은 집에 갔다.


그렇게 수술 둘째 날의 밤이 오고 있었다.
by _푸훗_ | 2005/11/17 17:58 | -- 병원, 300일. | 트랙백 | 덧글(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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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사흘나기 at 2005/11/17 23:08
스케이트를 타다 엉덩방아를 찧은 통증의 100만배면.. 상상이 안 가네요. 요즘에는 진통제 없이도 잘 주무시죠?
Commented by 덧말제이 at 2005/11/18 00:03
간병을 해주시던 분이 정말 좋으셨네요.
마치도 친딸처럼 돌봐주셨군요.
Commented by 개울 at 2005/11/18 01:26
담담한 듯 쓰시지만 글이 참 아파요.
몇 분 떠나시고 남으신 여사님이라더니 정말 고마운 분이시군요. 착한 동생분이 언니를 보면서 많이 아팠겠어요.
Commented by 흣튼혜음 at 2005/11/18 01:45
개울님의 말이 맞아요
Commented at 2005/11/18 09:11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푸르미 at 2005/11/18 11:53
죽을만큼 아팠겠네요 뭐. 엉덩방아 100배면. 부은얼굴이 막 상상이 가네요.
Commented by _푸훗_ at 2005/11/18 15:18
사흘나기 / 네, 주사는 이제 필요 없어요. 대신 약은 많이 먹죠. 약을 안 먹으면 생활이 불가.. 쿨럭;; 뭐 그래도 살만합니다. ^_^


덧말제이 / 네, 정말 좋은 분이세요. 나중엔 병원서 딸, 딸- 하고 부르실 정도 였으니까요. 같은 병실 사람들도 다 처음엔 어머니인 줄 아셨죠. ^_^


개울, 흣튼혜음 / 방긋.


비공개 / 네, 알아요. 우리 십대들이 헤쳐 나갈 인생길~ 워크숍 간다던데 감기 걸리지 않게 조심해요. 바람이 매섭더라고요. 돈내기 게임 같은 거에선 무조건 이기는 센스를 발휘하길!


푸르미 / 그런거 상상하면 못써요. -_- 내가 이래뵈도 꽃미녀 소녀라는(안 보인다고 너무 뻥치는거 아냐?)...쿨럭. 어쨌든 상상하지 말아요.-┎
Commented by 봄날의곰 at 2005/11/18 19:47
롯데월드 스케이트장에서 넘어지면 아픈것 보다는 창피함이...[덜덜] 그리고 피가 많이 나셨다니, 어흑. 왠지 소름이;;;
Commented by _푸훗_ at 2005/11/18 20:23
저 시절은 거의 피와의 전쟁이었어요. 동생은 피를 볼 때마다 현기증에 헛구역질까지 할 정도였으니까요. 나야 뭐, 안 보이니까;;
Commented by 이샤 at 2006/02/24 16:02
배터저 죽는줄 알았다, 에서 우하하하하 웃다가 웃음소리가 너무 커 민망해서 (여기는 사무실) 손으로 입을 가리다가 물 가득 든 컵을 팔꿈치로 건드리는 바람에 책상은 물바다가 되고 난생처음 마우스는 수영을 했답니다.(만담? 히히)
Commented by _푸훗_ at 2006/02/24 22:47
앗, 블로그에 만담꾼 출현~ 안녕, 이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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