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데렐라 / 제임스 핀 가너 ◈
신데렐라
Written by James Finn Garner


옛날 옛적에, 신데렐라라는 젊은 여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녀를 낳은 생모는 신데렐라가 어렸을 때 돌아가셨습니다. 몇 년 뒤에 아버지는 과부와 재혼했는데, 계모는 신데렐라보다 나이가 많은 두 딸을 데려왔습니다, 계모는 신데렐라를 몹시 구박했고, 의붓언니들은 신데렐라를 마치 무보수 하녀처럼 마구 부려먹었습니다.


하루는 그들의 집에 초대장이 날아들었습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농민들에 대한 착취를 자축하기 위해, 왕자가 가장무도회를 연다는 것이었습니다.
신데렐라의 의붓언니들은 궁전에 초대되자 기뻐서 어쩔 줄 몰랐습니다. 그들은 값비싼 드레스를 준비하기 시작했는데, 그 옷을 이용하여 타고난 몸매를 비현실적인 여성미의 기준에 맞도록 억지로 바꾸고 예속시킬 작정이었습니다. (그들은 유별나게 못 생겨서 이 기준과는 동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경우에는 이것이 더한층 비현실적인 기준이었습니다.) 계모도 무도회에 갈 계획이었기 때문에, 신데렐라는 개보다 더 열심히 일해야 했습니다. (이 표현은 불행히도 종(種)차별적이지만 적절한 비유입니다.)
무도회 날이 오자, 신데렐라는 계모와 의붓언니들이 야회복을 입는 것을 도와주었습니다. 이것은 정말 만만찮은 일이었습니다. 마치 비인간 동물 시체의 가공육 10㎏을 5㎏들이 소시지 자루 속에 억지로 집어넣으려고 애쓰는 거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다음에는 엄청난 양의 화장품을 덕지덕지 찍어바르는 작업이 이어졌지만, 여기에 대해서는 아예 말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것입니다.
저녁이 오자, 계모와 의붓언니들은 신데렐라에게 집안일을 다 끝내놓으라고 이르고 궁전으로 떠났습니다.
신데렐라는 슬펐지만, 홀리 니어(페미니스트이며 좌익계 포크송 가수)의 레코드를 듣는 것으로 마음을 달랬습니다.

그때 갑자기 불빛이 번쩍하더니, 헐렁한 무명옷을 입고 챙이 넓은 모자를 쓴 남자가 신데렐라 앞에 나타났습니다. 신데렐라는 그가 남부 출신의 변호사나 악단장인 줄 알았지만, 그는 곧 자기 신분을 밝혔습니다.
“안녕, 신데렐라. 나는 너의 수호천사란다. 네가 원한다면, 신의 대리인이라고 해도 좋아. 그런데 무도회에 가고 싶다고? 아름다움에 대한 남성들의 개념에 속박당하고 싶다고? 혈액순환을 차단할 만큼 몸에 꼭 끼는 드레스 속에 네 몸을 억지로 쑤셔넣고 싶다고? 뼈의 구조를 망가뜨릴 하이힐 속에 네 발을 억지로 집어넣고 싶다고? 비인간 동물을 대상으로 실험한 화장품을 네 얼굴에 바르고 싶다고?”
“네, 그래요.”
신데렐라는 당장 대답했습니다.
수호천사는 긴 한숨을 내쉬고, 그녀에 대한 정치적 교육은 다른 날로 미루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는 마술을 부려 신데렐라를 아름답고 눈부신 빛으로 감싼 다음, 눈 깜짝할 사이에 궁전으로 데려갔습니다.
그날 밤 궁전밖에는 수많은 마차가 줄지어 늘어서 있었습니다. 마차를 여럿이 함께 타고 온다는 생각은 누구의 머리에도 떠오르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곧이어 노예 말들이 힘겹게 끄는 황금빛 마차를 타고 신데렐라가 도착했습니다.
그녀는 몸에 꼭 맞는 비단 드레스를 입고 있었습니다. 이 비단은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누에한테서 훔친 것입니다. 그녀의 머리는 진주로 장식되어 있었는데, 이 진주는 열심히 일하는 무방비 상태의 진주조개한테서 강탈한 것입니다. 그리고 위험한 생각처럼 여겨질지 모르지만, 발에는 아름답게 깎은 크리스탈 유리로 만든 구두를 신고 있었습니다.
신데렐라가 들어가자, 무도장에 있던 사람들의 머리가 일제히 그녀 쪽으로 돌아갔습니다.
바비 인형 같은 여자를 이상적으로 여기는 남자들은 그 이상형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신데렐라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욕정을 불태웠습니다. 어릴 적부터 자신의 몸을 경멸하도록 길들여진 여자들은 시샘과 적개심이 뒤섞인 눈으로 신데렐라를 노려보았습니다.
신데렐라의 계모와 의붓언니들은 질투에 눈이 먼 나머지, 신데렐라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마상 창시합과 곰 놀리기(곰을 묶어놓고 개를 덤벼들게 하는 구경거리)에 대해 친구들과 의논하느라 여념이 없던 왕자도 곧 신데렐라를 보았습니다. 무도장을 둘러보던 왕자의 눈이 신데렐라의 자태를 재빨리 포착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녀를 본 순간, 왕자도 거기에 있던 대다수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한동안 말문이 막히는 일종의 발작을 일으켰습니다.
왕자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저 여자야말로 내가 아내로 삼아 우리 왕가의 완벽한 유전자를 물려받은 자손을 수태시킬 만한 여성이다. 그리하여 주위의 모든 왕자들이 나를 부러워하게 만들 수 있는 여성이다. 게다가 저 여자는 금발에 하얀 피부와 푸른 눈을 갖고 있다!’


왕자는 무도장을 가로질러, 점찍은 희생자를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친구들도 신데렐라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무도장에 있던 다른 사내들도 70세 이상의 노인과 음료를 시중드는 급사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그녀 족으로 일제히 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신데렐라는 자기가 일으키고 있는 소란에 기분이 우쭐해졌습니다. 그녀는 머리를 꼿꼿이 쳐들고 걸으면서, 사회적 지위가 높은 여성처럼 굴었습니다.
하지만 이 소란이 추악한 것, 적어도 사회의 역기능을 갖고 있는 무언가로 변질되고 있다는 사실이 곧 분명해졌습니다.
왕자는 그 젊은 여성을 ‘소유하겠다’는 결심을 친구들에게 분명히 밝혔습니다. 하지만 왕자의 결심은 친구들을 화나게 했습니다. 그들도 신데렐라에게 욕정을 느낀 나머지, 그녀를 소유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사내들은 소리를 지르며 서로를 밀쳐대기 시작했습니다.
왕자와 가장 절친한 친구는 두뇌 발달이 좀 뒤떨어지긴 하지만 덩치가 큰 공작이었는데, 그가 무도장 한복판에서 왕자를 가로막고는 ‘자기’가 신데렐라를 갖겠다고 고집을 부렸습니다.
왕자는 친구의 사타구니를 걷어차는 것으로 자신의 기분을 나타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공작은 일시적으로 전신마비 상태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성적 욕망 때문에 제정신을 잃어버린 다른 사내들이 당장 왕자를 붙잡았습니다. 왕자는 수많은 인간 동물들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남성 호르몬이 광포하게 표출되는 것을 보고, 여자들은 질겁했습니다. 하지만 싸우는 남자들을 떼어놓으려고 해도 도저히 떼어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다른 여자들한테는 신데렐라가 이 모든 말썽의 원인처럼 보였기 때문에, 그들은 신데렐라를 에워싼 가운데, 같은 여성에 대한 동정심이라고는 전혀 없이 적대감만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신데렐라는 달아나려고 했지만 실용성과는 동떨어진 유리 구두를 신고 있어서 도망치는 것은 거의 불가능 했습니다. 그녀에게는 다행한 일이지만, 다른 여자들도 불편한 구두를 신고 있는 것은 모두 마찬가지였습니다.


소란이 너무 커졌기 때문에 탑의 시계가 자정을 알리는 소리를 아무도 듣지 못했습니다.
종이 열두 번 울린 순간, 신데렐라의 아름다운 드레스와 신발은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녀는 다시 촌스러운 누더기를 걸치고 있었습니다. 계모와 의붓언니들은 이제 그녀를 알아보았지만, 입장이 난처해질까봐 입을 다물었습니다.
여자들은 이 마술적인 변신에 깜짝 놀라 조용해졌습니다.
드레스와 구두의 속박에서 해방된 신데렐라는 숨을 깊이 들이마시면서 기지개를 켜고 옆구리를 득득 긁었습니다. 그러고는 미소를 지으면서 눈을 감고 말했습니다.
“자, 원한다면 나를 죽이세요, 여러분. 하지만 적어도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죽을 거예요.”
그녀를 둘러싼 여자들은 또다시 샘이 났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반응을 보였습니다. 신데렐라에게 앙갚음하는 대신, 그들은 고래수염으로 몸에 꼭 끼게 만든 조끼와 코르셋과 구두를 비롯해서 몸을 옥죄고 있던 옷가지를 모두 벗어 던졌습니다.
마침내 속박에서 해방된 그들은 완전한 기쁨에 겨워 속치마만 입은 채 맨발로 춤을 추고, 팔짝팔짝 뛰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남성적 파괴의 춤에 열중해 있는 남자들이 고개를 들었다면, 정숙한 여자들이 마치 침실에 있는 것처럼 흐트러진 옷차림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남자들은 서로 때리고 주먹을 날리고 발로 걷어차고 할퀴느라 여념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이 같은 짓을 한 사람도 남지 않고 모두 죽을 때까지 계속했습니다.
여자들은 혀를 찼지만 연민의 정은 전혀 느끼지 않았습니다. 궁전과 왕국은 이제 그들의 것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맨 처음 취한 공식 조치는, 그들이 벗어 던진 옷들을 죽은 사내들에게 입한 다음, 왕자와 그의 친구들이 여정취미가 있는 것을 폭로하겠다고 누군가가 협박하는 바람에 싸움이 일어났다고 언론에 발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취한 두 번째 조치는, 여성들을 위해 편안하고 실용적인 옷을 만드는 의류협동조합을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이어서 그들은 ‘신더웨어’(신제품 의복의 브랜드 이름임)를 광고하는 간판을 성 위에 세웠고, 자주적인 결정과 현명하고 독창적인 마케팅을 통해 모두-심지어는 신데렐라의 계모와 의붓언니들까지도-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 정치적으로 올바른 배드타임 스토리 > / 김석희 옮김 / 실천문학 중에서
typing by graymental
by _푸훗_ | 2005/11/10 17:53 | -- 머리를 담그고, | 트랙백 | 덧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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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yugo at 2005/11/10 21:16
어 이거 우리학교 국어책에 나와있던데...
Commented by _푸훗_ at 2005/11/11 12:31
정치적으로 올바른 운동이 교과서에까지 침투되었군요;;
Commented at 2005/11/11 12:39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카인의후예 at 2005/11/11 13:06
이거 디게 재밌네...^^; 동화책이 얼마나 '이데올로기'적이고 '정치'적이라는 것을 잘 보여주는군요.ㅋㅋㅋ. 제 미니홈피에 퍼갑니다..^^
Commented by _푸훗_ at 2005/11/11 13:38
비공개 / 당신 바보죠? 깔깔. 동생이랑 컴을 함께 써서 시간이 들쭉날쭉해요.


카인의후예 / 안그래도 신데렐라를 싫어했었는데 고등학교때 이 책을 읽고는 너무 재밌어서 학교에 가져가서 애들한테 맨날 얘기해줬다는거 아니겠어요. 좋아라하는 애들도 있었고 동화는 소녀의 로망이야, 라면서 불쾌해하던 애들도 있었다는;
Commented by 봄날의곰 at 2005/11/11 23:03
색다른 맛의 신데렐라군요. 푸훗님 이글루에 오면 많은 걸 배우고 가게 된다니까요. 이번엔 왕자가 금발벽안의 신데렐라를 좋아라하는 것을 보고 잠시 웃었습니다.:)
Commented by _푸훗_ at 2005/11/12 13:37
재밌기는 이 신데렐라가 최고였고 의미면에선 인디언들의 신데렐라가 좋았죠. 방긋. 그리고 무언가를 배우고 가신다고 하니 괜히 으쓱-
Commented by 푸르미 at 2005/11/13 23:39
하핫 재밌네요. 어디에서 이런 이야기를... 동화책의 '미'는 정말 '미'인지 생각해보게 되네요. 아름다운 이야기라는 것으로만 아이들에게 말해줄 수 있는 건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Commented by _푸훗_ at 2005/11/14 14:13
초중고교 때, 아버지와 서점에 자주 갔어요. 이 책은 고교 때 아버지와 서점에 가서 고른 책이고요. 사전 정보없이 갔었는데 서점 아저씨랑 친분이 조금 있었거든요. 아저씨가 추천했어요. 한번 쯤 읽어보라고요. 읽고서는 반해서 애들한테 마구 전파했었죠. 푸훗. 그 서점 아저씨 생각이 나네요. 전형적인 386세대 이셨는데 데모, 박종철 고문 사망 같은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어요. 나를 위해 안 팔리던 잡지 서브도 매월 들이시고 영화 포스터들 모아 놨다가 다 주시고 그러셨는데.. 서점 폐업하고 지금은 뭘하며 살고 계실지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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