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랄한 여성 보컬의 노래 몇 곡, ◈
98년부터 2000년까지 (Sub)라는 음악 잡지를 구독했었다. 매월 Sampler CD를 한 장씩 끼워줘서 정말 사랑하는 잡지였다. 대부분 국내 인디밴드들의 곡이 수록되곤 했는데 가끔 Pizzicato five(의 이파네마서 온 소녀,를 이 잡지를 통해서 듣고 어찌나 신선하던지!)나 Kent 같은 밴드들의 곡이 수록되기도 하는 아주- 좋은 잡지였다. 미선이, 언니네 이발관, 노브레인, 앤 등 90년대 홍대 인디씬의 음악들은 모두 이 잡지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이상은을 재발견하게 된 계기도 부록으로 나온 씨디의 힘이 크다. 게다가 이 잡지의 편집부들이 너무너무 친절했다! 싸가지없게 쓴 내 독자엽서도 다 실어주고, 내가 선물 달라고 협박했더니 정말로 씨디 세 장을 보내오기도 하고 가끔 공연 티켓도 보내줬다. 과월호를 내놓으라는 협박에 나에게 극비로 연락해 내가 원하는 과월호 세 권을 그냥 보내주기도 했다. 아니, 세상에 이렇게 친절한 편집부가 어디 있단 말인가! 대학에서 처음 친구를 사귈 수 있었던 것도 이 잡지 때문이었다. 강의실에서 잡지를 읽고 있었는데 내 옆 라인에 앉아있던 애도 서브를 읽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고 서로의 잡지를 한번 본 다음 너무 반가워서 이야기를 시작했었으니까. 서브는 주류 메이저 잡지가 아니었던 탓에 은밀한 동질감 같은 것을 느낀 것이다. 여러모로 서브는 나에게 위대한 잡지였다.


내가 이렇게 잡지 서브에 대해 늘어놓는 이유는 오늘 들을 곡들이 서브의 샘플 씨디에 수록되었던 곡들이기 때문이다. 발랄한 여성 보컬의 느낌은 정말 싱그럽다. 특히 정현의 행운아는 잡지를 구독할 당시에는 그냥 그렇게 넘겨 들었던 곡인데 2001년에 새롭게 발견한 곡이다. 플레이어에 씨디를 넣고 차례대로 듣고 있었는데 이 약간 촌스러운 기타와 힘있는 보컬. 게다가 가사, 가사는 정말 최고였다. 당시 한량이던 나의 처지와도 너무 딱 맞아떨어졌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가사가 정말 마음에 들었다. 비누도둑의 여성비가는 데모버젼이라서 음질이 좋진 않았지만 파격(!)적이고 너무 솔직한 가사는 정말 데굴데굴 구르게 만들었다. 이 비누도둑의 보컬이 홈페이지도 운영하면서 책도 발간했었는데 그 책 제목이 생각나지 않는다;; 조동익의 그림자 춤. 음악을 만든 사람은 조동익이지만 보컬은 허은영이다. 몽환적이고 반복적인 패턴인데 중독되는 느낌이다. 조동익 사단의 스타일이 잘 반영된 곡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현 / 행운아
나는 매일 늦잠을 자고,
꿈 속에선 모든게 있고,
누구도 나에게 아무런 관심 하나 갖지 않고,
덧없는 '욕심'들도 포기한지 오래야.
시력이 좋은 두 눈과, 아직 튼튼한 두 다리로,
나는 언제든 떠날 수 있지.
그 어디라도
내 '주머니'는 가볍고,
나의 입술은 말라도,
난 웃을 수 있지.
떠날 곳도, 머물 곳도 없지만.



비누도둑 / 여성비가
이마에 손톱 자국 났어 오늘은 널 만나러 갈 수 없어
왜이리 내 청춘은 이다지도 기름만 많은 걸까
엊그제 생리 시작했어 오늘은 널 만나러 갈 수 없어
왜이리 내 청춘은 이다지도 냄새만 나는 걸까
밤 새워 술 퍼 눈이 붰어 오늘은 널 만나러 갈 수 없어
왜이리 내 청춘은 이다지도 조심스러울까
전화 기다리다 깜빡 잤어 오늘은 널 불러 낼 수가 없나
니가 먼저 내게 삐삐 친다면 인생이 편할텐데


난 슬퍼하지 않아 탓하고 주정하지도 않아
열받지도 애타지도 않아
예쁜 얼굴로 널 보러 갈수만 있다면


이마에 손톱 자국 났어 난 정말 뽀드락지 미워
엊그제 생리 시작했어 난 정말 여자인거 싫어
밤 새워 술 퍼 눈이 붰어 난 정말 레몬소주 미워
전화 기다리다 깜빡 잤어 하지만 오늘은 기다릴께



조동익 / 그림자 춤
낡은 서랍 속 숨긴 눈물이 어디 있는지 지금 생각나


집으로 되돌아 달려가며 길 위에 뿌려진 하얀 꿈이
집으로 되돌아 달려가면 어느새 돌아온 어린 시절
달빛 가득한 파란 골목 비밀스런 밤의 향기
땀을 흘리던 그림자 춤 나를 부르는 아득한 소리


네온 불빛 속 꿈을 꾸었지 나는 어디로 가고 없는지


집으로 되돌아 달려가며 길 위에 뿌려진 하얀 꿈이
집으로 되돌아 달려가면 어느새 돌아온 어린 시절
달빛 가득한 파란 골목 비밀스런 밤의 향기
땀을 흘리던 그림자 춤 나를 부르는 아득한 소리



-앗싸,
by _푸훗_ | 2005/11/08 18:45 | -- 귀를 기울이며, | 트랙백(1) | 덧글(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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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mi-ring at 2005/11/15 12:30

제목 : 그 여자들의 노래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1. 팝의 여전사 혹시 여성주의와 대중음악에 관한 다큐 < 팝의 여전사>라는 영화를 본 적 있니? 그 영화를 봤을 때 우리는 이미 알고 있던 여성뮤지션들, 혹은 몰랐던 여성들이 스스로의 목...more

Commented by flechette at 2005/11/08 20:29
정말 좋은 잡지였죠. 언더그라운드가 태동하던 시기에 긍정적인 역할도 많이 했구요. 하지만 비트도 그랬듯이, 이런 마이너한 잡지는 역시나 단명하더라구요. 참 아쉽습니다.
Commented by _푸훗_ at 2005/11/08 21:18
당신도 이 잡지를 봤었군요. 정말 좋은 잡지였어요. 편집자와 기자들도 좋았죠. 아, 정말 그리운 잡지에요. 돌연 서브의 폐간 소식을 접했을 땐 정말 -┎ 한 네티즌이 서브를 스캔해서 홈페이지에 올리기도 했었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네요. 어쨌든 반가워요. 안녕, 강철화살.
Commented by 카인의후예 at 2005/11/08 21:27
귀여운 날강도. 푸훗.
Commented by _푸훗_ at 2005/11/08 21:41
아니에요. 무서운 날강도죠! 나 사실 무시무시한 사람이라고요. 랑랑.
Commented by 도둑년 at 2005/11/08 22:27
비누도둑 보컬은 '나는 미소년이 좋다' 란 책을 냈죠.
Commented by 김C™ at 2005/11/09 00:49
서브란 잡지가 인디밴드들에 대한 정보들을 꽤 많이 주곤했었죠.

지금은 핫뮤직이란 놈 한놈만 남아 고군분투하네요. 누구 음악좋아라하는 돈좀 있는 양반이 시원스럽게 하나 출간했으면 좋겠구만..쫩.
Commented by laystall at 2005/11/09 01:14
저는 동생이 매월 샀었습니다.
Commented by _푸훗_ at 2005/11/09 09:12
도둑년 / 아, 나는 미소년이 좋다, 였군요.


김씨 / 핫뮤직은 남아있군요. 근데 핫뮤직은 5-6년 전 기억이 다라 기사의 컨텐츠는 그리 좋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 무어 지금은 모르지만요. 맞아요, 돈 많은 양반이 시원하게 출간하면 좋으련만!!


레이스톨 / 멋진 동생을 두었네요. 푸훗. 내가 병원에 있을 때 잡지는 모두 처분되고 이제 남은 것은 씨디 뿐이에요. 집에 돌아와서 책장의 아랫쪽을 봤을때의 그 허무함이란, 흑흑.
Commented by 데미안 at 2005/11/09 12:10
간만에 가요를 들어보네요..소개해준 노래가 다 좋은데요~
특히 가사가 와닿아요. 줄창 사랑타령만 하는 노래에 식상해있었는데 신선하게 들리네요.
Commented by 흣튼혜음 at 2005/11/09 12:36
돈많은 출판인이라.. 재국이한테 한번 운을 띄워보는게.. 건전가요 전문잡지 어허야 둥기둥기(가제)
Commented by 에우 at 2005/11/09 12:42
점심이라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여유가 있네요.-
흠흠
지금의 전 떠나기에 너무 많은걸 가지고 있는거 같아요. 행운아가 아닌걸까요? ㅠ.ㅜ
Commented by _푸훗_ at 2005/11/09 14:48
데미안 / 가사 너무 좋죠! 90년대 인디씬엔 이렇게 좋은 곡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어요. 나도 사랑타령만 하는 주류 가수들 노래는 정말 재미없어요.


흣튼혜음 / 전재국이 우리의 희망이 되는 건가요, 큭. 혜음이랑 김씨가 출판 기획 가지고 찾아가봐요. 혹시 아나요, 만나줄 지도(라고 쓰고 시공사 근처에도 못간다, 라고 읽네요. -_- 흑).


에우 / 떠날 수 없어도 떠날 수 있어도 행운아에요. 떠날 수 없는 사람은 가진게 많으니 행운아고 떠날 수 있는 사람은 떠날 수 있어 행운아인 걸요. 방긋. 그러니 에우도 행운아~
Commented by 달군 at 2005/11/09 17:43
마이링 타고 들어왔어요. 반갑습니다 ~
노래 좋네요 ^^ 처음듣는데.
지난 주제글이 음악에 관한것이었는데. 트랙백 또 보내주세요
Commented by _푸훗_ at 2005/11/09 18:50
안녕, 달군. 마이링은 취지는 참 좋은데 사이트가 활성화되지 않은 것 같아서 조금 아쉽습니다.
Commented by 흣튼혜음 at 2005/11/09 23:31
아..푸훗양도 마이링에 가입했구나. 거 보니까 좋은 블로그가 되게 많더라구요. 열심히 글 주고 받다보면 배울 점도 많고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나게 되실 듯. (무엇보다도 거기 블로그들은 거개 이쁜 누나야들이 운영하는 블로그라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들더군요 어우 이 밝힘증 -_-;)
Commented by 에이 at 2005/11/10 00:31
안녕하세요. 마이링 타고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숨겨진 좋은 노래들이 정말 많군요. 인디 음악은 거의 접해보지 못했었는데 멋진 노래 소개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복숭아 at 2005/11/10 01:46
저는 해체 후에 fizzicato five를 알게 되어 땅을 치고 통곡했죠. 앗, 올빼미님의 블로그를 타고 왔습니다.
Commented by _푸훗_ at 2005/11/10 15:57
흣튼혜음 / 이쁜 언니야들한테 꽂힌 거구나! 깔깔.


에이 / 한국 인디에도 유명한 밴드들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사람도 많으니까요. 유명해진 밴드들의 음악도 좋지만 알려지지 못한 뮤지션들의 음악도 좋은 것이 참 많아요. 사람들이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찾아보면 좋은 곡들을 무궁무진하게 발견할 수 있는 곳이 바로 한국 인디씬이에요. ^_^


복숭아 / 그랬군요. 피치카토 파이브를 필두로 한 시부야 계열의 음악들을 한참 듣다가 지금은 좀 뜸해요. 게을러서 찾아 듣질 않네요. 생각난 김에 오늘 시부야 음악들을 찾아보든지 해야겠어요. 방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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