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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비에 장애인이 등장하는 횟수가 잦아지고 있다. 켈베스에선 강원래가 진행하는 장애인 관련 프로그램이 정규편성되어 있을 정도이다. 그리고 드라마, 드라마에서도 장애인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변호사들>에서도 이쁘장하게 생긴 여자가 하반신마비 장애인으로 등장했었다. 드라마를 보진 않아서 어떤 역할이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리고 재작년 <불새>라는 드라마에서도 주인공 중 한 명이 장애인으로 등장했었다. 장애인에 관한 디테일한 묘사들이 이것저것 거슬리긴 했지만 무어 자료조사가 부족했으면 그럴 수도 있지 않겠나 싶었다.
왜 이렇게 드라마 이야기를 늘어놓는가 하면 어제 방영분의 <프라하의 연인> 때문이다. 극중 재희(전도연)의 친구로 등장하는 배우가 장애인으로 나온다. 제대로 된 직업도 있고(외교관이라니!) 사회 참여도 적극적인 역할이다. 아,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에 변화가 생긴 모양이다, 라는 생각이 들어서 흐뭇하기도 했다. 그런데 어제 방영분에 윤규(윤영준)와 상현(김주혁)이 대화를 나누는 씬이 있다. 윤규가 상현에게 말을 하면서 "내가 다리는 이래도 오지랖은 넓거든요" 이런 대사가 있었다. 오지랖이 넓은 거랑 하반신 마비인 것이랑 도대체가 무슨 상관이냔 말이다. 휠체어를 타면 오지랖도 넓으면 안 되는 건가? 작가가 무슨 생각으로 그런 대사를 썼는지 모르겠다. 혹시 그가 장애인인 것을 강조하고 싶어서 그런 대사를 넣었나? 그런데 그 대사에서 그의 장애가 강조되면 어떤 효과가 있지? 장애를 가졌지만 밝고 건강하게 살아가면서 친구의 연애사에도 적극 조언을 한다는 이미지를 풍기고 싶었나? 드라마를 봐온 사람들은 굳이 그런 대사가 없어도 다 알고 있는데, 도대체가 작가의 의도는 무엇이란 말인지. 츳. 그런데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동생은 내가 너무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이야기한다. 사소한 대사 한마디 가지고 뭐 그러냐고. 목욕탕 기사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내가 너무 편협한 사고로 목욕탕 사건을 '비난'한다고 말했다. 너무 내 입장에서만 이야기한다고. 하지만 이 블로그의 주인은 나이고 1인 미디어 시대에 나라도 장애인의 목소리를 내야한다고 생각한다. 나로 인해서 이 블로그에 오는 블로거들이 장애인의 목소리를 듣고 한번쯤 생각할 수 있다면 그것부터가 참 고마운 일이니까. 장애우"라는 말에 대해서도 동생은 사람들이 그럴수도 있지 않겠느냐, 라는 입장이다. 동정의 시선 따위는 둘째치고 라도 일부 비장애인들은 그 말이 더 부드럽고 친근하게 느껴져서 쓰는 것 아니겠냐, 그리고 다른 장애인들도 다 나처럼 생각하는지 물었다. 다른 장애인들도? 그래서 찾아봤다. 네이버에서 찾아봤더니 사람들은 장애우라는 말을 아주- 좋은 명칭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장애인의 입장에서 쓴 글은 찾을 수가 없었다. 다시 구글에서 찾아봤더니 '장애우'라는 말을 쓰지 말자, 라는 운동까지 벌였었단다. 역시 나만 그랬던 것은 아니군. '장애우'라는 말은 1987년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가 설립되면서 쓰이기 시작한 말이다. 장애우(障碍友)는 장애를 가진 사람과 장애를 갖지 않은 사람 모두가 친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말엔 결정적인 결함이 있다. 바로, 비주체적인 말이라는 것이다. 장애우라는 말은 내(비장애인)가 장애인을 지칭하거나 장애인이 다른 장애인을 지칭하는 경우에만 사용할 수 있다. 내(장애인)가 나를 지칭하는 말로는 사용할 수 없는 것이다. 집단을 지칭하는 표현은 모든 인칭에서 쓰여져야 함에도 '장애우'라는 표현은 1인칭에서는 쓸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장애우라는 표현은 장애인을 비주체적이고 비사회적으로 형상·구조화 하는 단어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장애우'라는 부드러운 표현이 장애인들에게 편하게 다가갈 수 있지 않느냐고 주장한다. 그러나 비사회적이고 비주체적인 그리고 자신의 사회적 정체성을 부정하는 용어를 써 가면서까지 '장애우'를 고집한다는 것은 또 다른 의미에서 장애인을 시혜와 동정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누군가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했다. 집단을 지칭하는 개념이나 단어는 그 집단의 사회적 관계와 위치를 반영하는 것이다. 더 이상 편의주의에 사로잡혀 장애인을 비주체적, 비사회적인 인간으로 왜곡하는 '장애우'란 표현을 써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데 이런 표현을 방송은 물론 장애인 스스로까지 사용하는 기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도대체 왜? 장애인이라는 말 이전에는 장애자(者)라는 말을 썼고 그 이전에는 아무 말도 없었다고 한다. 불구자, 병신 혹은 특정 장애인을 가리켜 절름발이, 꼽추, 맹인 같은 부정적인 말을 사용했다. 그래서 장애자라는 말을 만들어 1981년 <심신장애자복지법(心神障碍者福祉法)>까지 제정되었다. 그런데 한 장애인이 왜 놈자(者)를 쓰느냐, 며 항의를 해서 장애인으로 바뀌었다. 기자, 학자 등에서도 사용되는 말인데 그 사람은 부정적으로 인식을 한 모양이다. 그래서 장애인이 되었지만 아직도 장애자라는 말의 잔재가 많이 남아 (애자)라는 비속어로 쓰이기도 한다. (이상 장애인 실업자 종합 자원 센터 사무국장 '엄태근' 님의 글과 하사가장애인상담넷 운영자 '이복남' 님의 글을 수정, 정리) 후, 이 포스트를 작성하면서 느낀 것은 너무 많이 갇혀 있다는 것이다. 장애인 스스로도 너무 장애에 갇혀서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나부터 그렇지만;;) 비장애인들도 너무 그들만의 아우라에 갇혀 있다. 이런 것들이 사라져야 대한민국이 그나마 좀 나은 사회가 될 터인데 아직은 갈 길이 너무 멀다. 하지만 멀다고 걸음을 내딛지 않는 것보다는 한 걸음부터 라도 천천히 시작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라는 것을 우린 모두 알고 있다. 놀러 오시는 분들, 내 포스트를 읽고 한 걸음이라도 내디뎌 주세요. -크리드를 들으며, 보태기 : 이 포스트를 작성하면서 생각난 에피소드 하나. 재활의학과 병동 시절에 같은 병실에 나보다 한 살 많은 언니가 있었다. 다리에 철심 박고 여튼 다리가 불편한 언니였다. 몸도 근질거리고 찌뿌둥하다면서 언니는 친구와 함께 근처 찜질방에 갔다. 환자복을 입고 갔는데 입구에서 저지당했다. 아니 그냥, 다리만 불편한 것이라고 전염되는 병 아니라고 그렇게 말했음에도 언니는 결국 들어가지 못했다. 씩씩거리며 병실로 돌아와 그 찜질방에 들어가고 말겠다면서 사복을 입고 병원을 탈출했다. 언니는 그날 찜질방에서 무단외박을 하고 병원에 돌아오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환자와 장애인임을 드러내고 사는 것이 얼마나 고달픈 일인지 잘 보여주는 에피소드 같아서 보태기로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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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쁘고 쭉빵도 아닙니다..by 쓰레기 at 10/25 잘 읽고 갑니다. ^^ by 무량수 at 05/23 시발섹스하자 시발 옥윤.. by 섹스년 at 04/20 어머 이런게 있었군요! 잘.. by 나무물고기 at 04/11 님께서 갖고 계신 "24 시즌".. by 김광수 at 01/03 감사합니다!! by Com on at 09/14 안녕하세요? _푸훗_ 님! .. by pulbaat at 01/25 음악 너무 좋아서 검색하.. by 윈디아 at 01/25 즐겁고 기쁜, 그리고 .. by laystall at 01/02 _et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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