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냈어?'
라는 말을 나는 굉장히 싫어한다.
오랫만에 연락이 닿은 사람이거나 할 때면 열에 아홉은 저렇게 말문을 열곤 하지.
내가 저 인사를 싫어하는 이유는 바로
질문 받는 사람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아니 '잘 지냈느냐'라고 묻는게 무어 나쁜 의도냐고?
그럼 당신도 늘 저렇게 말해왔다는 거야.
자자, 이제 다시 이야기를 해볼까.
'잘 지냈느냐'라는 인사에서 문제가 되는 부분은 바로 '잘'이라는 부사에 있다.
뜻을 살펴보자면
'익숙하게, 능란하게, 좋게, 훌륭하게, 옳게, 바르게, 착하게' 등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이 좋은 뜻들이 무슨 문제냐라고 생각하겠지.
상대에게 저렇게 물을땐 이미 듣고 싶은 대답이 정해진 경우가 많다.
옳고, 훌륭하고, 착하고, 바르게 잘 살았길 바라는 바람도 있겠지만,
착하게 살아왔다는 대답이 듣고 싶은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별뜻없이 무심코 던지는 저 질문엔
이미 정해져 있는 대답을 듣길 원하는 마음이 담겨 있는 것이다.
보통 저런 질문을 받으면 '응, 잘 지냈지.'라는 대답들을 주로 한다.
설사 내가 너무나도 고통스럽고 힘든 나날을 보냈다 하더라도 예의상 대답한다.
만약 '아니, 잘 지내지 못했어.'라고 대답할 경우
질문을 던진 이는 '아뿔사, 내가 왜 물었지.'라는 생각을 하며 뻘쭘해 할 때문이다.
무심코 내뱉는 저 인사엔 서로의 암묵적 합의가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아니 예의상 하는 인사에 뭐 이렇게 열을 올리며 말하냐 싶겠지만,
난 저 인사가 정말 싫단 말이다.
이미 정해져 있는, 듣고 싶은 대답을 원하는 인사라니 정말 무섭다.
난 그래서 '어떻게 지내느냐'라는 인사를 한다.
'어떻게'에는 무수히 많은 상황들을, 대답들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너무너무 힘들어서 누군가에게 하소연하고 싶은데
'어떻게 지내느냐'라는 말을 들으면 아무 거리낌없이 털어놓을 수 있다.
나에게 '당신 잘 지냈지'라는 강요를 하지 않아서 말이다.
자 이제 당신도 '잘 지냈어'라는 인사는 그만 하라고.
상대방이 너무 지쳐서 당신에게 속내를 털어놓고 싶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잘'이라는 말로 무한한 가능성을 차단하지 말자고.
당신이 그러지 않아도 현대인들은 늘 외롭고 지쳐있으니 말이야.
당신이 그러지 않아도 현대인들은 늘 대화가 부족하니 말이야.



-b&s_waiting for the moon to rise.를 들으며,

-------------------------------------------------------------------------------2004/07/23 22:55


오늘 이전 블로그의 글들을 몇 개 읽었다.
응, 내가 이랬구나- 싶더라.
그런데 난 여전히 '잘 지냈어?' 라는 말이 싫어,



-당신은?
by _푸훗_ | 2007/03/05 23:56 | -- 혼자 말하기. | 트랙백 | 덧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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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르노 at 2007/03/06 11:41
저는 이 말보다, 이 말을 해야하는 순간들이 싫어요... 그런데 그 순간이 이말마저 하지 않으면.. 정말 할말이 없답니다. -.-a
Commented by Bucephalus at 2007/03/06 18:34
그 침묵이 안겨주는 묘한 죄책감!
Commented by _푸훗_ at 2007/03/06 18:35
이 말을 해야하는 순간들... 사람들과의 관계라는 것이 그렇기도 하죠. 어쨌든 난 지금 수면의 과학 ost를 듣고 있어요. 공드리랑 같이 꿈꾸는 것 같아요!
Commented by _푸훗_ at 2007/03/06 18:36
와, 실시간 댓글이다.
Commented by at 2007/03/07 12:42
아니 예전에도 이런 글을 썼는데 또.. 라고 생각했답니다. ㅎㅎ

이 글을 본 이후 잘 지냈어? 라는 인사는 의식적으로 피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나 인사를 받는 건 피할 수 없는 법. 종종 이런 인사를 받으면, 친한 이들에게는 '그럴리가요!' 라고 답한답니다. ("네 괜찮아요", 라고 답하는 경우는, 사실 대화꺼리가 없는 관계일 경우) 대부분은 당황하며 왜? 라고 묻죠, 그리고는 하소연 시작-
^^;;
Commented by 푸른꽃 at 2007/03/07 19:06
누구에게 전화를 먼저 걸거나 받아본지 너무 오래되서 기억이 안나요...
내가...... 뭐라고 했더라......
Commented by _푸훗_ at 2007/03/09 22:08
을 / 오~ 내가 쓴 글을 읽고 그랬다니깐 기분 좋은걸요. 먼 곳에서 아프지 말고 이쁘게 살고 있어야 해요. ^_^


푸른꽃 / 바보,
Commented by narsha at 2007/03/10 01:17
저는 '언제 한 번 보자.'라는 말이 제일 싫어요. 서로 안 볼거라는 거 뻔히 알면서도 정말 그냥 하는 말이잖아요. 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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