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랑 보고대회에
다녀 왔었다.


2월 초에 이랑에서 원고&발표를 의뢰 받았었는데 이놈의 회사서 22일 조퇴건을 늦게 처리해주는 바람에 원고&발표는 다른 분이 하기로 하고 난 그냥 참석만 했다. 그날도 자립생활센터의 활동보조를 지원 받아(고마우신 센터장님) 보고대회가 열리는 여성프라자에 2시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4층 시청각실에서 행사가 진행 되었는데 생각보다 큰 규모에 깜짝 놀랬다. 늘 20명 안팎의 장애여성들 끼리만 모여 놀다가 어림잡아 7,80명이 그 큰 행사장에 들어 앉은 것을 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장애인이 되고 나서 그렇게 장애인이 많이 모인 곳에 간 것은 처음이었는데 모두들 당당하고 아름다워 보여 기분 좋은 동질감도 느꼈다. :-) 내 멘토님은 먼저 자릴 잡고 앉아 계셔서 그 곳에 합석. 멘토님이 모시고 온 다른 장애인 분과도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니 곧 행사가 시작되었다.


작년 9월부터 서울시의 지원을 받아 시작된 이 사업에 대한 브리핑을 시작으로 사업만족도와 전후의 역량강화 조사 분석 보고가 있었다. 스크린이 설치되고 PT 형식으로 진행되었는데 역시 장애인 행사라서 그런지 수화도우미가 있었다. 난 솔직히 나의 장애유형 말고는 큰 관심이 없는데(변명하자면 소극적 관심인거다) 수화도우미를 보고 있다가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수화도우미는 구화(口話)도 함께 진행하고 있었다. 또박또박 정확한 구화를 구사하기 위해 입을 최대한 크게 벌리면서 분주하게 수화와 구화를 진행하고 있었다. 테레비서 해주는 수화도 구화가 함께 진행되었었나, 한참을 생각해도 기억이 안났다. 아 맨날 장애가 어쩌구 저쩌구 말하면서 이런 것 하나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다니, 두둥. 한참을 더 배워야해.


사업만족도와 조사 분석 보고는 사전에 나누어준 책자에 표들로 기재되어 있었다. 그것들을 하나하나 살피면서 아 우리가 이런 상태구나, 이렇게 생각했구나 등등 그간 이랑 모임에 참석했던 경험들을 정리할 수 있었다. 전체 장애여성의 티끌정도 밖에 되지 않는 모임이지만 참여자들이 이 사업에 만족하고 지속적인 지원을 원하며 장기적으로 발전하길 원한다는 내용은 정말 대공감. 나 말고 다른 사람들도 다 이렇게 생각하는구나, 싶으니 괜시리 뿌듯했다. 전후 조사에선 우리의 자아인식 및 역량강화에 대한 내용이 있었다. 의외의 결과가 나온 부분이 있어 살짝 놀랬으나 더 나은 삶을 원하는 우리의 목표가 반영된 것이라하니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했다.


다음은 우리의 노동상담 사례와 정책대안에 대한 보고가 이어졌다. 이 보고에선 정말 욱하는 사례들이 줄을 이었다. 내가 이전 회사에서 겪었던 어이없던 사례는 새발의 피. 우리 장애여성들이 사회의 편견과 차별 속에서 인간답게 살기 위하여 고군분투하는 상담내용들은 정말 욕지기가 절로 나왔다. 순간순간 장내가 술렁일 정도로. 일부 꾀많고 더러운 비장애인 기득권층이 만들어 놓은 사회에서 힘없는 장애여성으로 살아가기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흥, 젠장. 퉤퉤.


그리고 언니네 네트워크의 운영위원이 여성과 멘토링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2부가 시작되었다. 멘토링에 대해 더 나은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괜찮지 않은 사람들끼리 괜찮아지는 것이라고 정의를 내린 것은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해주었다. 그동안 멘토링에 대해 막연히 인생의 선배의 손을 붙잡고 따라가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것은 나부터 이미 상하관계를 조성한 것이었다. 괜찮지 않은 사람들끼리 서로의 손을 붙잡고 때론 포옹도 하고 사뿐사뿐 걸어나가 괜찮아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멘토링이 더 의미있어 졌다고나 할까. 언니네가 말하는 여성주의에 대해 조금은 깊이있게 들을 수도 있어서 앞으론 언니네에 종종 들르겠다는 다짐을 꽝꽝. 이 글을 쓰면서 다짐을 머릿속에 다시 한번 새긴다.


이어 해오름 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소장님이 동료상담에 관한 말씀을 전했다. 동료상담도 멘토링과 마찬가지로 불완전한 사람들이 모여 완전을 꿈꾸는 것이라는 의미로 정의를 내릴 수 있게 도와준 말씀이었다. 이랑에서 우리들이 모여 이야기했던 것들도 어찌보면 일종의 동료상담이었다. 하지만 정식 동료상담은 더 체계가 있고 깊이가 있어 보여 한번쯤 참여하고 싶었다.


잠시 휴식을 마치고 사회자와 패널로 구성된 위원회가 짜여져 멘토와 멘티의 소감 발표를 마치고 토론이 이어졌다. 여기서부턴 좀 어수선했는데 쉬는 시간이 길지 않았던터라 아직 많은 인원이 행사장을 이탈해있었고 시간이 촉박해 좀 대충대충 넘어가서 아쉬웠다. 보고대회에서 가장 기대되었던 것은 이 토론시간이었는데 17시에 시청각실에서 다른 행사가 예정되어 있어 심도있는 토론이 이뤄지지 않아서 아쉬웠다. 다음에 또 보고대회가 있으면 시간을 넉넉하게 잡아 열띤 토론이 오고가길 기대한다. ^_^


보고대회가 끝난 후 여기저기 어른들과 인사를 나누며 이쁨을 받고ㅋㅋ 멘토님과 전철역에 가기 전에 근처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불고기를 시키고 9월에 개최된다는 세계장애인대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3/4일 일정인데 여름휴가를 반납하고 9월로 미뤄 참가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세계의 장애인들이 모여 우리의 인권과 편의 등 많은 것들에 대한 세미나도 열리고 알찬 행사 같았다. 이랑에 묻어가면 참가비도 1/4 수준이라 마음이 흔들리는 중,히히. 멘토님이 참가하면 많이 배울 수 있을 거라며 마구 뽐뿌질을 하셨다. 흐흐. 그러다 이랑 위원회도 식당에 오셔서 옆 테이블에서 식사를 했다. 식당에서 한시간도 넘게 앉아서 수다를 떨었다. 아이, 즐거워. 배시시.


어쨌든 이번 보고대회 참석은 의미 있었다. 내가 이랑 모임에 나갔던 목적과 의의를 근사하게 정리할 수 있었고 우리의 현실에 대해 다시 한번 돌아볼 수 있었다. 이제 9월 장애인 모임에 참석하려면 돈 모아야 한다. 후후. 이랑 만세, 쵝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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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_푸훗_ | 2007/02/26 21:58 | -- 혼자 말하기. | 트랙백 | 덧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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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neverC at 2007/02/26 22:48
하하 글쓰기가 점점 일기화 되시네요 :)
Commented by _푸훗_ at 2007/02/26 23:30
뭐, 어차피 혼자 말하고 노는 카테고리잖아요. 푸훗. 네버씨, 메롱 :-p
이상하게 네버씨한테 꼭 메롱 하고 싶었어요, 깔깔.
Commented by 그림자나그네 at 2007/02/26 23:57
미소짓고 갑니다
Commented at 2007/02/27 00:08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_푸훗_ at 2007/02/27 00:12
그림자나그네 / 안녕, 그림자나그네.


속닥속닥 / 메롱메롱, 아싸- ㅋㅋ
Commented by 푸른별리 at 2007/02/27 13:02
멋지다! 수고많았어요 푸훗.

난 얼마전에 서점갔다가 여성노동자들의 현실에 대해 다룬 만화책을, 만화책이니까 적당히 가벼운 맘 먹고 볼 수 있겠지- 싶어 집어들었다가 한시간 내내 붙들고 울면서 봤던 기억이 있어요. 두번세번봐도 슬프더라. 만화였을뿐인데. 어줍잖게 들어 다 안다고 생각했던 내용인데.. 글구 예전에 '십시일반'인가 하는 인권만화책에서 그런 그림을 봤더랬어요. 기득권 남성이 앉아있는 의자를 평범한 남성이 떠받들고 있고, 그 남성을 다시 여성이 떠 받들고 있고, 그 여성을 다시 여성장애인이 떠받들고 있고, 그 여성장애인을 다시 이주여성노동자장애인이 맨 밑에서 받친 채 부들부들 떨고 있었던가.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아무튼 그 그림 보면서 소름끼쳐했던게 막 생각나네요. 그냥 여성노동자로 살아가는 것도 어려운데(시덥잖은 알바생인 나도 느끼는 -_ㅠ!) 하물며 여성장애인노동자로 노동시장에서 살아남는단건 어떤의밀까 싶어요. 쳇 우리끼리 똘똘뭉쳐 못된것들에게 하이킥을 날립시다. 에잇.

그나저나 여성프라자..라면, 그 뭐냐. 1호선 대방역인가 할튼 그쪽에 있는 거기 맞나요? 예전에 거기 1층 여성사박물관에 갔었던 적이 있거든요. 규모도 크고, 시설도 좋던데 :)
Commented by laystall at 2007/02/27 15:06
참 의미있는 자리에 다녀온 것으로 보이네. 그 발걸음에 더 많은 힘과 활기가 깃들 수 있을 세상에 일조하겠습니다. 갑자기 왜 존칭이냐면 쫌 더 무게 있어 뵈잖어. _푸훗_ 파이팅.
Commented by _푸훗_ at 2007/02/27 21:33
별리 / 그 그림은 정말 제대로 끔찍한걸요. 그게 또 현실이라는 것이 더 끔찍하고. 요즘 여수 사건도 있고 그래서 이주노동자 문제에 관심이 생겼는데 역시나 이 아름다운 세상은 우리에게 풀어야 할 과제들만 잔뜩 건네주네요. 우리끼리 하이킥을 날리다 지치면 완소윤호도 좀 빌려올까요? 푸훗. 그리고 여성프라자는 대방역에 있는 그 좋은 건물 맞아요. 그런데 서울시는 그거 지어 놓고 정말 필요한 단체들에게 분양하는 것이 아니라 임대사업으로 뱃가죽에 기름띠 두를 정도로 돈을 벌고 있어서 욕 제대로 먹고 있죠. 이런 프라자 한개인가 두개인가 또 건설 중이어서 예산낭비다, 지랄한다 등등의 욕을 또 먹고 있답니다. 서울시는 여전히 각성하라?


레이스톨 / 응, 완전 좋았어. 정말 의미있는 자리였고. 장애인권 신문인 에이블뉴스 같은 곳에서 취재도 나왔더라구. 어쨌든 신나는 자리였어. 아싸~
Commented by 이즈 at 2007/03/03 01:38
편지 잘 받았어!!! 넘 기뻤어-
나도 오랜만에 편지지에 답장써야지. 조만간! ^_^

정말, 곱게 살도록 놔두지 않는것 같지? 이노무 사회가...
여수 사건으로 내가 일하는 곳은 비상 사태야.
그런데, '짱깨들 한국에서 꺼져라'라는 어이없는 인터넷 악플보다 더 무서운건 사람들의 무관심인 것 같애.
굳이 '소수자'라고 구분짓지 않아도,
우리모두 다 나약한 한 사람 한 사람에 지나지 않는데 말야.
영원히 보장되는 기득권층이라는 건 없는데도...

암튼, 화이팅하자!
돈 열심히 모아서 꼭! 세계장애인대회 다녀오길 바래.*_*
Commented by _푸훗_ at 2007/03/04 19:53
아싸~ 요즘 우표가 붙은 편지를 자주 받고 있는데 기분 좋고 설레거든. 히히, 언니 편지도 벌써부터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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