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무지하게 크던 인턴은 다른 과로 옮겨가고 상냥하고 이쁜 인턴이 왔다.
병원에서 나를 맡는 의사나 간호사는 내가 어떻게 병원에 오게 되었는지 다 알았다. 그놈의 차트, 흥. 그래서 과도한 관심을 보이거나 괴물 취급하는 사람도 가끔 있었기 때문에 꽤 불편했었다. 과잉 친절에서 느껴지는 그 인위적 관심은 견딜 수 없게 만들었다. 차라리 괴물 취급받는 것이 속 편했지. 어쨌든 8월을 함께 한 인턴, K언니와는 자연스러운 교류가 이뤄졌다. 가느다란 몸으로 강단 있게 나를 치료하는 모습을 보면(사실 보진 못했다. 난 여전히 엎드려 있었으니) 괜히 신뢰도 생기고 믿음이 가는 그런 사람이었다. 여튼, 이 당시 나의 큰 과제는 바로 변비였다. 그래서 병원에 들르는 야쿠르트 아줌마에게서 슈퍼100을 하루에 하나씩 사 먹었다(뭐 그렇다고 변비가 크게 나아진다거나 한 것은 아니다. 일종의 위안이지). K언니도 내 상태가 걱정이 되었는지 언제부터인가 병실에 올 때 불가리스나 닥터캡슐 같은 요구르트를 슬그머니 놓고 갔다. 주치의와 함께 있어도 몰래 주고 다른 환자들이 볼까 봐 또 몰래 줬다. 남자 친구(나중에 결혼도 했다)도 같은 병원 인턴이었기 때문에 언니가 비번일 때도 병원에 자주 들렀는데 그때도 병실에 들러 내 손을 잡고 기도를 해주고 요구르트를 먹인 다음 동생을 데리고 나가 밥을 사주곤 했다. 둘이 연애하는데 동생은 뭣 하러 데리고 나가냐고 하면 남자 친구가 동생을 이뻐하니깐 꼭 데리고 나가야 한다면서 웃었다. 웃는 모습이 참 예뻤다. 서로 책도 바꿔 읽고 이야그도 많이 하면서 참 가까워지니, 언제부턴가 언니가 나에게 꼭 선물하고 싶은 것이 있다고 했다. 뭐냐고 물어도 웃기만 하고 때를 기다리라고 했다. 뭘까 뭘까 한참 궁금하던 어느날이었다. 오후5시 즈음해서 언니는 기타를 멘 남자를 데리고 병실로 들어왔다. 짠- 선물이야, 하면서 꺄르륵 웃었다.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그 분은 기타를 꺼내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CCM이었다(뭐 잘은 몰랐지만 대충 그런 분위기였다). 노래를 몇 곡 부르곤 손을 잡고 기도를 하셨다. 낯 모르는 사람이 나를 위해 기타를 들고 병원까지 와주었구나, 라고 생각하니 왠지 눈물이 났다(그래도 우는 건 창피해서 꾹 참았다). 기도를 마치시곤 K양이 이야기를 많이 했다면서 보고 싶었다고, 언니가 다니는 교회의 전도사님이라고 하셨다. 난 고맙다고 언니에게 거듭 인사를 했고 언닌 진작에 해주고 싶었는데 전도사님 시간 맞추느라 늦었다며 미안해했다. 하하, 이렇게 쓰니 드라마의 한 장면 같다. 한쪽에선 고맙다고 이야기하고 다른 한쪽에선 미안하다고 이야기하는 감동적인 장면이라니! 푸훗. 2002년 징그럽게 더웠다던 그해 여름, 난 이렇게 따신 선물을 받고 수술 부위가 호전되고 있었다.
|
카테고리
-- 책을 읽고,-- 머리를 담그고, -- 귀를 기울이며, -- 혼자 말하기. -- 병원, 300일. 이전블로그
2007년 05월2007년 03월 2007년 02월 more... 최근 등록된 덧글
이쁘고 쭉빵도 아닙니다..by 쓰레기 at 10/25 잘 읽고 갑니다. ^^ by 무량수 at 05/23 시발섹스하자 시발 옥윤.. by 섹스년 at 04/20 어머 이런게 있었군요! 잘.. by 나무물고기 at 04/11 님께서 갖고 계신 "24 시즌".. by 김광수 at 01/03 감사합니다!! by Com on at 09/14 안녕하세요? _푸훗_ 님! .. by pulbaat at 01/25 음악 너무 좋아서 검색하.. by 윈디아 at 01/25 즐겁고 기쁜, 그리고 .. by laystall at 01/02 _etc.
Random!
텍스트지향 스팸퇴치, Click! 온라인 문법/철자 검사기 ![]() ![]() E-mail, Google_talk graymental@gmail.com MSN_Messenger salinbum@hotmail.com 이글루 파인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