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림이스트 선언 / 현경 ◈
살림이스트 선언
살림이스트 : 명사. 살림에서 온 말 ;
모든 것을 살아나게 함


1.
한국의 에코페미니스트 혹은 한국 에코페미니스트의 비전에 참여하고 싶어하는 세계의 모든 사람들을 의미. 살림이스트는 모든 것(특히 죽어가는 지구)을 살아나게 함. 살림은 한국 여성이 매일 하는 가정일을 일컬음. 예를 들면 나무하기, 물 긷기, 음식하기, 빨래하기, 베 짜기, 아이 키우기, 병간호, 노인 돌보기, 꽃•나무 가꾸기, 우물 지키기, 소•닭•개 키우기, 그리고 집의 영(靈)들을 돌보기 등. 살림은 또한 망가지는 것(냄비, 신발, 그리고 가슴 등)을 고치는 일을 일컬음. 한국 사람들이 “저 여자 살림꾼이네” 하고 말하면 그것은 그 여성이 모든 것을 살아나게 하는 기술, 예술, 전문성이 있음을 말함. 예를 들면 모든 사람을 배부르고 행복하게 먹이는 것, 가족의 평화, 건강, 풍요함을 끌어내는 것(이때의 가족은 모든 종류의 생명을 포용하는 큰 가족 개념을 의미), 아름다운 삶의 환경을 만드는 일 등.


2.
살림이스트는 마술사, 혁명가, 여신처럼 모든 것을 만짐. 그녀가 만지면 모든 것이 웃고, 자라고, 태어나면서 생생하고, 색깔 있고, 살아나게 됨. 그녀는 채식주의 음식을 즐겨 만듦.(그러나 아주 가끔, 그녀가 화가 매우 많이 나면 못된 놈들을 큰 솥에 넣고 끓이기도 함) 그녀는 운동의 전략이나 근본적인 사회 변혁의 비전을 요리해내는 것도 즐김. 그녀는 라틴 아메리카의 에코페미니스트 ‘콘스파라다’들 처럼 함께 머리를 회전시켜서 중요한 것을 짜냄. 더러운 늙은 남자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정치•경제 제도와 오염된 강을 청소하는 것이 취미. 어떤 살림이스트들은 더러운 늙은 남자가 만들어내는 쓰레기를 ‘가부장적 자본주의’라고 부름. 그녀는 포용하는 자, 끌어안는 자임. 그녀는 ‘다름’들이 신나는 것이며, 우리의 면역 체계를 향상시키는 것이라고 믿음. 다른 종의 식물들과 나무들은 숲을 강하게 만들고, 다른 민족들은 만나서 아주 예쁜 아이들을 만들고, 다른 색깔의 실들은 무지갯빛 색동을 만든다고 믿음. 그녀는 모든 것을 다 포용함. 남녀노소, 빈부귀천, 학력, 성한 몸, 장애인, 성적 취향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을 그녀의 잔치에, 예배에, 부정의에 대항해서 싸우는 데모 등에 그들의 의도가 좋다면 다 참석시킴. 그러나 그녀는 ‘칼리’ 여신처럼 무서운 포용주의자임. 그녀는 만약 못된 의도와 악한 마음들을 보면 정의의 칼로 그 목들을 잘라 그녀의 목걸이로 만들어버림. 그녀는 강인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어머니들처럼 “여자를 쳤어? 바위를 친 줄 알아” 하며 부정의를 향해 포효함. 그러나 결국 그녀는 모든 것을 끌어안음. 선과 악, 빛과 그림자, 더러움과 깨끗함, 기쁨과 슬픔, 고통과 해방, 분노와 자비 등. 그것들이 다 그녀의 영혼에, 명상에 시에 좋은 밑거름들이 되기 때문이라고 함. 그녀는 특히 인도의 칩코 운동을 일으킨 여자들처럼 너무 끌어안기를 좋아함. 도끼를 든 나무꾼들에게 “저를 죽이고 나무를 죽이세요” 하고 윙크하면서.



3.
살림이스트는 모든 것을 재활용함. 종이, 우유팩, 병, 정치가, 지도자들, 옛 애인, 전 남편, 고대의 신들, 그리고 삶 자체를. 혁명적 변화가 빨리 오지 않는다며 사람들이 좌절하면 그녀는 호탕하게 웃으면서 그들을 격려함. “긴장 푸세요. 백만 번도 더 이 삶으로 돌아오면서 그 이상을 이루면 되니까요. 지금 여기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그 다음엔 춤춥시다” 하면서.


4.
살림이스트는 ‘신처럼 생각하는’ 평화주의자임. 한국에 있는 살림이스트들 중 어떤 사람들은 혼인을 했는데 그 남편들은 그녀를 ‘안해-아내’라고 부름. ‘햇볕 정책’[1]으로 그녀는 가는 곳마다 갈등을 비폭력적으로 풀어 평화와 화해, 그리고 조화를 만들어냄(상상력이 풍부한 한 언어학자는 한국어의 살림, 히브리어의 살롬[평화]. 아랍어의 살람[평화]이 샅은 어원에서 생긴 것이라는 이론을 내놓음. 인류는 모두 아프리카 대륙에서 출발했으므로 그럴 수도 있겠으나 아직 학문적 근거가 밝혀진 것은 아님).


5.
살림이스트는 여성, 자연, 지구, 여신 등을 사랑함(가끔씩 남신들, 예수, 붓다, 루미 같은 신적인 남자들을 사랑하기도 함). 그녀는 밥, 연꽃 등과 모든 여성적인 것, 페미니스트적인 것을 사랑함, 그리고 그녀는 새롭게 자라나고 있는 ‘살림꾼’ 남자들과 모든 흐르는 것을 사랑함. 눈물, 강물, 구름, 생명 에너지, 기, 샥티, 프라나, 루아, 그리고 그녀가 월경하며 흘리는 피 등. 그녀는 “삶은 유기체, 오르가니즘(아니면 오르가즘)이야. 증식시켜!” 하고 속삭임. 그녀는 봄처럼 오고, 오고, 오고, 또 돌아옴. 살림이스트는 그녀의 자궁과 우주의 자궁, 그리고 창조력을 축하함. 그리고 그녀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을 사랑함.


6.
만약 우머니스트와 페미니스트의 관계가 보라와 연보라의 관계라면 살림이스트는 짙은 녹색으로 나타남. 그 색깔은 ‘어둠을 정면으로 뚫고 들어가 끌어안고 변화시키는(En-darken-ment)’ 색임. 그 짙은 녹색은 보라와 연보랏빛의 꽃들을 더욱 아름답게 만듦.


*살림이스트 선언을 쓸 수 있도록 영감을 주신 한국의 많은 여성들과 흑인 여성 작가 앨리스 워커(Alice Walker)에게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살림’ 이라는 말에 시적 상상력을 불어넣어주신 김지하 선생님께도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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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햇볕 정책’은 남한 정부가 북한 정부를 향한 정책이긷 함. 이 정책은 50년이나 계속된 남북 간의 증오, 의심, 폭력 등을 녹이는 데 조금은 기여했음. 남북한 지도자들은 2000년 6월에 50년의 분단을 넘어 극적 상봉을 했음. 남북한의 여성들은 만약 남북한의 국가원수가 모두 여성이었다면 이미 남북통일을 이루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음.


*현경(玄鏡)
세계 진보신학의 명문 뉴욕 유니언 신학대학, 그 165년 역사상 최초의 아시아 여성 종신교수.
세계의 학계와 언론이 창조적 신학자로 앞다퉈 소개해옴. 학문, 사회 운동, 영적 수련, 예술의 경계를 넘나들며 '다름' 사이의 다리를 놓는 문화통역사이자 신학적 예술가이며, 여성·환경·평화운동가이기도 함.
신학자 같지 않은 '튀는' 외모의 소유자로도 유명함. 펴낸 책으로는《다시 태양이 되기 위하여》,《결국은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 거야》등이 있고, 그 외 여러 학술적인 논문들이 있음.
현재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평화운동을 펼치고 있음.



-『미래에서 온 편지』, 현경 / 열림원 펴냄 중에서
typing by grayment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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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이스트 선언의 내용은 나의 의견과 100% 일치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충분히 공감이 가고 고개를 끄덕거리게 되는 내용임은 분명하다. 현경이 좀 선동적이고 공격적으로 선언문을 작성하긴 했지만 아마도 꾀많고 더러운 일부 늙은 남자들에게는 이렇게 분명하고 공격적으로 이야기해야 먹히리라 생각한 듯하다. 어쨌든 <미래에서 온 편지>는 읽을 만한 러브레터인 듯. 방긋.
by _푸훗_ | 2005/12/06 21:18 | -- 머리를 담그고, | 트랙백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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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가짜집시 at 2005/12/06 21:38
흠. 꾀많고 더러운 남자라 그런지 (늙었..다는 이야긴 차마 내 입으론 못하고) 아무튼 멋있는데요, '살림이스트'.
Commented by _푸훗_ at 2005/12/06 22:01
멋지죠? 책도 잼있어요, 멋지고. 씨디도 부록으로 들어 있어요. 이히히. 나 오늘 기분 이상하게 방방 떠요. 먹고 있는 약이 좀 조정되었는데 그것들이 몸 속에서 요상한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건 아닌지, 혼자 상상하고 있음. 오늘은 에트라빌 부작용의 날이에요. 깔깔.
Commented by laystall at 2005/12/07 01:32
ㅎ.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여성이 제게 미소라도 지어주시는 날엔 전력으로 도망치고 싶어질 것 같슴다.
Commented by 푸른별리 at 2005/12/07 12:32
현경님 얼마전에 저희학교에 강연차 다녀가셨어요. 전 못가봤지만;

저도 100% 공감하는 것은 아니지만 저분이 말씀하시고자 하는 바에대해 어느정도 수긍합니다. 그러니까, 저런 선언을 하게 된 의도랄지 추구하고자 하는 바에 대해 '그래, 그럴 수도 있겠구나.. 아. 이러이러한 현 사회적 배경 속에 요런 운동이 이렇게 저렇게 생겨 나고 있는 거구나' 라고 생각하는 정도.. 랄까요? :)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이 내용은 '한국사회의 여성들이 운동해야 할 방향성제시'라기보다는 '세계여성들 - 특히 정신 못차리고 있는 부자나라 여성들 - 이 자각하고 운동해야 할 방향성 제시'로 다가옵니다. 그래서 '세계시민된 입장'으로는 끄덕끄덕 한다는 말예요 :D 푸훗님은 어때요?
Commented by _푸훗_ at 2005/12/08 22:13
레이스톨 / 그런 멋진 여성이 곧 나타나겠죠. 세상엔 멋진 여성이 넘쳐난다구요. 난 당신이 커플인 줄 알았어요. 친구의 애인을 구하는 것 보단 당신의 애인을 구하는 것이 더 시급해 보이는데요? 깔깔.


푸른별리 / 아, 그랬군요. 좋은 경험이었을 것 같은데.. 아쉬웠겠어요. 나도 별리와 같은 생각이에요. 우리나라 여성들에게만 제시하는 방향성이라고 보기엔 거시적인 선언이니까요. 그런데 부자나라의 골 빈 여성들에게 이 선언을 읽어주면 고개를 끄덕이긴 할까요? 갑자기 회의적이라는. -_-;; 영문으로 된 선언도 있는데 것도 타이핑해서 위키피디아 같은 곳에 뿌릴까요? 푸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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